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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한국경제 개발에 대한 피어슨 평가보고-1.개발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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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전자조서관   해외경제포커스 제424호 1970. 02. 23

http://dl.bok.or.kr/search/DetailView.ax?sid=19&cid=155040

 

한국경제 개발에 대한 피어슨 평가보고

이 논고는 국제부흥개발은행의 요청에 의하여 국제개발위원회가

작성하여 1969년 10월의 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제출한 소위

“피어슨 보고"(Pearson Report)중에서 부록에 붙어 있는

“개발의 현상” 가운데 한국에 관한 평가를 소개한 것이다.

“피어슨보고”는 11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방대한 것으로서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을 다루는데 있어 과거의 원조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실시방향에 대하여 유익한 권고를 하고 있어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믿는다.

최근 10년간 한국은 자기자원으로는 높은 성장을 달성할

수 없게 되어 영구히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운명에

놓여진 것처럼 보여왔다. 심각한 오직이 있었으며 인플레가

존재하였으며 원조에 관한 논의는 가장 신랄하였고 또한 이 나라의

생산물 수출은 낮았다. 그러나 사태는 격변하였다. 실질치로

추계한 GDP는 연평균 약 10%로 증가하고 있으며

수출은 연평균 40%를 넘는 속도로 증대하고 있다. 그리고

원조는 도중에서 상없차관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개발경험은 다른 조건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되었을 때에도

종종 원조가 유익한 결과를 나타내는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효과적인 성장촉진책을 달성하는데

있어 원조공여국과  원조수취국간의 대화가 성공한 가장

인상적인 예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한보다 효과적이기는 하나

어떤나라를 지나치게 급속히 원조졸업국의 지위까지

밀고 나가려는 시도에는 약간의 위험을 수반한다는

것도 시사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조건으로

다액의 산업신용을 끌어 들이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다음에서

논하는 바와 같이 한국경제를 왜곡시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 개발국면

제2차 세계대전은 한국을 중대한 군사적 피해없이 식민지적 지위에서

해방시켰다. 그러나 그 경제적 장래에 대해서는 가장 해로운 방법으로

국토를 분단하였다.  그때까지의 한국경제는 주로 일본시장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남과 북의 경제형태는 고도로 보완적이었다.

이 나라를 재통일하려는 교섭이 실패한 이후 남한의

의회민주주의 선택은 북한으로 부터의 침략을 초래하였다.

한국전쟁은 이 나라의 분할을 거의 변형시키지 못하였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을뿐더러 대부분의 자원을 파괴하였다.

한국전쟁이후의 한국정부는 두개의 주요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즉 하나는 공업건설이요 또 하나는 재건을 위하여 가능한 한 다량의

원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원조관계는 가끔 원활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국원조담당관이 한국의 공업화 주장에

충분히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미국은 원조의 필요성을

국내의 노력이나 정책과는 독립된 것이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자원은 미미하고 행정기구도 완전한 정세를

수행하거나 오직없는 통제를 행사하기에는 부적당하였다. 정부지출의

제한과 과세만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소비재 수요를 충족함으로써

만성적 인플레를 종식시킨 것은 항상 미국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업 시설건설이 전적으로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

1955~58년의 원조금융에 의한 수입의 약 8분의 1과 자국금융에 의한 수입의

상당부분은 기계와 운수설비였다. 그러나 인플레 와 공업화에 대해서는 양국간의 의견이

일치하는 일이 없었다. 또한 외환율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평가절하를 자기자원을 수출로 전환시켜 군사비지출에 대한 지원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았었다.

경제성장은 한국이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해감에 따라 이루어 졌다.

불변시장가격에 의한 국민총생산의 성장율은 1957년에는 8.8%에 달하였다.

그러나 다음 4년간에는 연평균으로 겨우 4.2%에 지나지 않았으며

1963년에 이르기까지 1957년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인플레는 실질적으로 멈추어졌지만 정책의 마찰이 상당히 성장을 저해하였다.

그러나 제 1차5개년 계획의 2차년도인 1963년에는 다시 고도성장이 시작되어

그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1960년에는 학생혁명이 1961년에는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1961년의 신정부는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경제에 대하여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초기정책은 정부지출과

공업에 대한 공공투자의 대폭적인 증가를 포함하고 있었다.

신정부는 비교적 저율로 농가에 거액을 대출하였다. 그리고 한국산업은행이나

중소기업은행을 통한 재정자금의 공업대부를 확대했다. 군사혁명 직전에

준비된 바 있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수정되어 1962년부터 실행되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원조공여국은 이 계획을 야심과잉이라고 보았고 또 공업사업계획에

대하여는 정부권한을 증대시키는 것이라 하여 반대하였다.

1963년 5월에는 경제기획장관과 미국과의 교섭에서 원조조건으로서

통화증발에 한도를 설치하고 실제로 원조의 일부분이 그후 일방적으로

중지되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정부는 경제개발을 촉진하기 전에 먼저 예산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납득하기에 이르렀다. 1963년 정부지출은 엄격히

삭감되고 인플레의 속도는 저지되었다. 1964년에는 극히 낮은 외환율을

설정하여 이것이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수출과

그 밖의 진흥활동에 대한 인련의 신용이나 조세특혜가 단계적으로 취해졌다.

1964년과 1965년에는 회피되어온 조세의 대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행적적 조치가

취해졌다. 1966년에는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대통령에 의하여 직접 보호되는 국세청이 설치되었다.

또 미국의 압력에 의하여 공익사업과 비료 및 석탄과 같이 과거 보조금을

받고 있던 정부사업도 이윤을 내도록 가격을 인상하였다.

1965년에는 개인 저축을 촉진하기 위하여 이자정책이 완전히 변경되었다.

은행예금에 대한 이자율은 30%로 인상되었으며 인플레의 속도는 약10%로 하락하였다.

이에 더하여 저축을 위한 강력한 애국적 운동이 전개(즉 학교에서)되었고 또한

공공 서비스(즉여권의 갱신)를 필요로 할 때에는 대중의 특별한 저축예금을 요구 받았다.

한국의 저축은 1962년이전에는 극히 낮아 민간부문에서는 국민총생산의 4%를 하회하였으며

또한 공공부문에 있어서는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 빈번하였다.

1965년의 개혁은 민간부문의 국민총생산에 대한 저축율을 평균 10%(1966~67년)에 까지

끌어올렸다. 1967년에는 조세재도의 급속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때에 제2차5개년계획(1967~1971년)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저축정책의

예기지 않았던 성공으로 7%의 성장목표 (이 목표는 1966년의 세계은행 사절단이

야심과잉이라고 생각한 목표이다)는 1971년의 수출목표를 10억달러로 올려 책정한 것에

대응해서 10%로 수정되었다.

정부는 비교적 정상적인 금융정책을 추구할 것과 시장을 통하여 조작할

것을 설득하였는데 그 계획추진은 단순한 지시정도의 것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먼 것이었다. 스스로의 정부지출에 첨가해서 정부는

민간부문에 있어서의 중심적 활동 (그것은 수출뿐만 아니라 화학공업 섬유공업과

같은 수입 대체산업도 포함함)을 촉진하기 위하여 공공저축을 이자율의 조작에 사용 하고있다.

또한 정부는 중공업 특히 종합제철소나 석유화학 콤푸렉스를 주로

외국 공급자의 신용뿐만 아니라 국내 일반 시장보다도 대폭적으로

낮은 이자율의 은행대출로 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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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전자도서관사이트에서 1970년대에 보고서를 보다가 흥미가 생겨서 읽어봤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7년이 지난 후 보고서 인데,  연10% 성장이면, 70년대에 2배넘게 성장을

했다는 말이다. 그 시기를 살았다면 엄청나게 체감이 왔을 것이다.

글로 보기만해도, 엄청난데, 미국이 반대 할만도 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바로는 인플레이션은 이자율이 높아서 발생하는 걸로 알고있는데,

보고서에는 이자율이 30%로 인상에서 속도가 낮아졌다라고 써져있네…

멀까… ? 이해가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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